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치킨, 원어민 발음

COLUMN/마마랜드

by modernmother 2018. 7. 12. 22:04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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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놈의 영어

아들은 요즘 아이들 치고는 영어를 늦게 시작했다. 그래도 알파벳 A B C D는 알고 초등학교를 갔지만, 유치원에서 가르쳐 주시는 과정 외 다른 수업은 하지 않았다. 초등학교 12학년 때는 방과후 영어로 버텼고,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친구랑 학원에 다니겠다고 해서 처음으로 보다. 그렇게 6개월 쯤 다녔는데, 치앙마이 여행에서 영어를 너무나 한 마디도 못 하는 걸 보고 아니다 싶어 영어 선생님을 모셨다.

늘 하기 싫어 주리를 튼다. 그런데, 공부는 원래 재미있는 거 아닌가? 모르는 걸 알아가는 건 다 재미있지 않나? 게임도, 요리도, 요가도, 수학 문제를 푸는 것도. 아들에게 "공부는 원래는 재미있는 거야." 했더니 "그건 엄마니까 그런 거지." 하는 답변이 돌아온다. "잘 생각해봐. 몰랐던 걸 배우는 게 공부인데, 재미가 없어? 뭐든 알면 재미있지 않아? 게임도 모르던 걸 알게 되면 재미있잖아."했더니, "그런가...?"하며 살짝 넘어갔다.

숙제를 제대로 하는 법을 몰라서 그런가, 하기 싫은 건가, 관심이 없는 건가 좀 너무 한가 싶어 5학년이 되면서 부터는 좀 챙겼다. 선생님께 예의는 지켜야지 싶어서. 모르는 단어는 사전을 찾고, 발음을 듣고, 안 보고 쓰고, 그리고 외우고, 해석하고. 처음에는 인상을 쓰며 틱틱 거리더니,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뭔가 성취감이 느껴진다며 재미있어 하기 시작했다. 지난 수업 시간에는 벌써 끝났어요? 라는 기특한 말을 하기도 했다. 녀석, 모르는 걸 알게 되면 재미있다니까.

가끔 영어 단어를 찾으면서 귀찮으니까 엄마 사전을 이용하기 시작했다. "엄마. 마더 스펠링이 뭐야."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이렇게 물으면 나도 모르게 자동반사로 "엠 오 티 에이치 이 알." 이렇게 대답을 하고 있는 거다. 이 몹쓸 모범생병 같으니라고. 이 녀석이 잔머리를 쓰고 있는 걸 알아채고서는 이제 단호하게, "사전 찾아봐."라고 말해준다. "그놈의 영어,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면 이거 안 배워도 되잖아.""그러엄! 니가 제발 그렇게 만들어 봐라.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으니, 할 수 있겠지!" 씩씩대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. 그런 걸 알려주고 싶었다.

치킨의 스펠링

지금부터 말하려는 일은 절대 5학년 때의 일이 아니다. 아들한테 이 이야기를 써도 되겠느냐고 허락도 받았다.

"엄마, 치킨 스펠링이 뭐지?" 
속으로는 그것도 몰라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온다. 그렇지만 꾹 참고 평정심을 겨우 유지한 채로 "사전 찾아봐."라고 우아하게 말했다.
"그냥 말해줘라."
"아니, 니가 찾아 봐." 단호하게 함정을 넘겼다.
"치킨. 씨인가?"
"글쎄. 찾아서 발음도 듣고 따라 해야지" 
"엉. 치킨."
"응? 소리가 이상한데?" 이 발음은 너무 익숙한 발음인데.
"(치킨) 치킨, (치킨) 치킨"
"취킨 이 정도 소리가 나는 거 아니야?"
"아니야, 원어민 발음 맞다니까."
"그럴리가." 뭔가가 이상하다.
"엄마, 와하하하하하! 와하하하하하하하!!"
"엄마 내가 잘 못 찾아서 국어 사전을 찾았어. 원어민 발음인데, 한국인 발음이야."
우린 와하하하하하 소리를 내며 한참을 웃었다. 우리 집에는  이런 일이 종종 일어난다.

"엄마, 친구들마다 각각 맡고 있는 게 있잖아. 어떤 친구는 수학을 잘 하고, 어떤 친구는 피구를 잘 하고. 각각 맡고 있는 게 있는데, 나는 말하자면 우리 반에서 웃음을 맡고 있어."
"오. 엄마는 절대 못 하는 일인데, 대단하다. 정말 자랑스러워. 그런데 선생님 방해되게 웃기는 거는 아니지?"
"으으음. 아.. 아.. 아닌데."

아들은 늘 유머러스하다. 늘 쿵후팬더처럼 공을 잘 돌려 방향을 바꾼다. 뭔가 혼내는 이야기를 해도, 어, 그 얘기는 좀 기분 나쁜데. 하며 자기 영역을 지키고, 누가 좀 더 기분 나쁜 얘기를 하면, 상처받았어. 라고 자기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다. 어쩌면 저 녀석이 나보다 고단수일지도 모른다. 바짝 긴장해야겠다. 방심하면 스펠링 불러 주는 엄마 에이아이가 될지도 모른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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